경북일보 [삼촌설] 금계 황준량 > 금계선생 발자취

본문 바로가기

금계선생 발자취

금계선생 발자취 HOME


경북일보 [삼촌설] 금계 황준량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회 작성일 26-08-09 07:48

본문


▲ 이동욱 논설주간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1517~1563)은 요즘 말로 ‘참공무원’이었다. 금계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에서 태어났다. 농암 이현보의 손자사위이며 퇴계 이황이 가장 아낀 제자였다. 스물네 살, 새파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해 요직을 두루 거쳤다. 홍문관 박사 호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이 돼 ‘중종실록’과 ‘인종실록’의 정리에 참여했다. 그는 엄밀하게 민정을 파악해 임금에게 보고하는 ‘추생어사’를 거쳐 신녕현감과 단양군수를 지냈다.

그의 공무원 생활 중 가장 기치 있게 볼 점이 단양군수 재직 시절 4800자의 장문으로 엮은 ‘단양진폐소(丹陽陳弊疎· 단양군의 열 가지 폐단을 없애기 위한 방편)’를 올린 것이다. 백성에 대한 측은지심이 묻어나는 이 소는 명문장으로도 유명하다. 상소를 접한 명종은 “10개 조항의 폐단을 진달(進達·소를 올린 것)해 논한 것이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사랑하고, 백성을 위한 정성이 아닌 것이 없으니 내가 아름답게 여긴다”고 답하고 단양에 20여 종의 공물을 10년간 감해주는 은전을 베풀었다.

성주목사 시절에는 영봉서원을 중수하고 공곡서당을 세웠다. 팔거현(지금의 칠곡)에는 녹봉정사를 세워 강학의 터전을 마련했다. 1561년에는 퇴계가 주자의 서간문을 가려서 묶은 ‘주자서절요’의 발간을 맡았다. 이후 1563년 봄 병을 얻어 사직하고 귀향하던 중 예천에서 향년 47세에 요절했다.

경북도가 최근 ‘영주 황준량 종가 소장 고문서’ 일괄을 경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지정 문화유산은 모두 8점으로, 교지류인 백패와 홍패 각 1점씩을 비롯해 황준량의 친필 붓글씨 ‘금계유묵’, 퇴계 이황이 직접 쓴 제문, 추증 교지 3점, 서원 정착 과정이 담긴 ‘녹봉정사 사적’ 등이다. 1540년(중종 35)에 작성된 홍패에는 황준량이 문과 을과 제2인으로 급제한 사실이 기록돼 있으며, 이황의 친필 제문은 제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남긴 글로 학술적·역사적 의미가 크다.

출처 : 경북일보(https://www.kyongbuk.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내용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