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기사/기록에서 황락(黃洛)-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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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6-08-06 06:21본문
문충공 서주(西厓) 유성룡(成龍)의 기사에서 황락의 기록을 찿아주세요
제시해주신 문헌(평해황씨 경진대동보 55~56쪽)의 내용 중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기사/기록에서 황락(黃洛)과 관련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한문 원문 구절 (55쪽~56쪽 연이어 나오는 대목)
"又按 文忠公 西厓 柳成龍 記事 雲 (又按 文忠公 西厓 柳成龍 記事 雲)..."
"(...) 漢光武 建武 四年, 學士 黃洛 興 丘擴, 古西古三兄, 帶雨文忠公記事, 詳其年紀 ... 黃洛 與 丘將軍 大林 始居 東國 ..."
2. 주요 기록 내용 상세 번역
① 황락과 구확의 입국 및 출신
서애 유성룡의 기사에 전하기를,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4년(서기 28년), 황락(黃洛)이 학사(學士) 구확(丘擴)과 함께 중국(태원/중원 지역)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동국(신라)에 처음 건너와 정착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② 황락의 거주지와 후손(평해황씨 시조)
황락은 동국(신라)으로 건너온 뒤 기성(箕城, 지금의 평해) 땅에 머물러 살았으며, 이로 인해 평해 황씨(平海 黃氏) 등 여러 황씨 문중의 시조(鼻祖)가 되었습니다.
함께 온 구확(丘擴)은 백씨(白氏)와 함께 임천(林川) 등에 머물러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③ '학사(學士)' 명칭 및 벼슬에 대한 고증
유성룡의 기사 및 관련 고증에 따르면, 한나라·신라 초기에는 공식적인 '학사(學士)'라는 벼슬 명칭이 없었으므로, 후세 학자들이 시조의 높은 학문적 성취와 문채(文彩)를 기리기 위해 '문학지사(文學之士)'라는 뜻을 담아 학사라 칭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약
서애 유성룡의 기록에서 황락은 서기 28년(후한 건무 4년) 중국에서 동해를 건너 신라의 평해(기성) 땅에 정착하여 평해 황씨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도시조/시조)로 명확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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