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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균 황유정 판서 추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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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6-08-0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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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균 황유정의 생애
미균(米균) 황유정(黃有定) 선생은 호가 미균(米균)이고, 본관은 평해이다. 선생의 부친인 황근(黃瑾)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겸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을 지냈다.

선생은 1343년(충혜왕 복위 4년)에 직제학 황근과 봉화정씨 사이의 3남 1녀중 3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문정공(文貞公) 근재(謹齋) 안축(安軸)의 따님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범하여 12세 되던 해인 1355년(공민왕4) 안동도회(安東都會)에 가서 시(詩)를 지었는데 시관이 그 시를 보고 과거에 응시하기를 권하였다.

선생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고 오직 글 읽기만을 좋아하여 잠들기 전에는 손에서 책을 놓아 본적이 없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논어(論語) 읽기를 즐겨하여 당시 세인들이 칭하기를 미균선생(米균先生)이라하였다.

이후 미균 선생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을 거쳐 예조전서(禮曹典書)와 공조전서(工曹典書), 형조전서(刑曹典書)를 지냈다. 그는 조선에 들어와서도 공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를 지냈다. 그는 이후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친 후 낙향하여 영주 구성 아래 자택에서 소쇄헌(掃灑軒)이란 현판을 걸었는데 배위(配位)는 이곳이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이다.

정부인(貞夫人)은 봉화정씨로 형부상서 정운경의 따님이다. 그의 아들은 지평(持平) 황전(黃銓)과 제주(祭酒) 황현(黃鉉), 훈도(訓導) 황연(黃연)이 있으며 현손(玄孫)에는 목사(牧使)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이 있다. 묘역은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을좌지원(乙坐之原)으로 황분토(黃墳土, 덕동)이다.

삼판서고택과 황유정
삼판서고택은 고려조에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낸 봉화인 정운경(鄭云敬)이 관직을 버리고 내려와 청렴하게 살았던 집이다. 그의 장남은 조선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三峯 鄭道傳)이다. 정운경은 이 집을 사위 황유정(黃有定)에게 물려주었는데, 황유정(黃有定)도 병을 이유로 낙향하여 말년을 이 고택에서 보냈다.

황유정은 사위 김소량(金小良)의 차남인 문절공(文節公) 담(淡)에게 이집을 물려줌으로써 형부상서 정공(刑部尙書 鄭公), 공조전서 황공(工曹典書 黃公), 이조판서 문절공(吏曹判書 文節公)등 세 분 판서가 살았다하여 세인(世人)들은 이 집을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출처 : 영주시민신문(http://www.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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