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간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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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3회 작성일 26-07-30 07:14본문
평해황씨 도시조 諱 黃洛 도래2000년 대동보편찬 간행고
평해황씨 계보는 도시조 황락이 서기 28년에 평해에 도래하셔서 아들 3형제를 두셨다는 기록이 있고, 그후 약 천년간의 기록은 계보형태로는 기록되지 못하다가, 고려조 고종때 금오장군을 지내신 온인 중시조로부터 약 천년 동안의 계보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올해가 서기 2026년인 이유는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삼은 연도체계입니다. 마찬가지로 평해황씨의 도시조가 서기 28년에 대한민국에 도래하셨다는 족보서문내용으로 보아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사셨다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한민국 황씨는 모두가 도시조의 후손이며, 현재 남한에 약 68만명이 살고 있고, 세계황씨는 약 7천만명입니다. 앞으로 2년 후 2028년에는 세계황씨들과 도시조 도래 이천년 기념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족보문화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록을 보존해서 자손만대 유산으로 물려주는것이, 뜻을 함께하시는 모든분들의 사명입니다.
평해황씨 족보편찬기록은 1550년경에 황준량선조가 쓴 족보말문이 국학진흥원에서 번역한 금계문집5권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선조께서 심은 덕이 남은 경사를 끼쳐 / 祖先種德流餘慶
명성이 유림을 움직인 사람이 대대로 있었네 / 名動儒林世有人
집안에 전한 시례의 가르침 떨어뜨리지 말고 / 莫墜傳家詩禮敎
강하처럼 독실하게 살며 꽃다운 자취 이으리 / 篤生江夏踵芳塵
그 후 1604년 해월 황여일 선조가 쓴 족보서문에는 대한민국에 도래한 도시조의 연도와 장소, 족보간행을 했던 행적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5세조 지정(之挺)선조는 고려고종(高麗高宗)때인 1255년에 태어나셨고, 벼슬은 통덕랑(通德郞)을 지내셨으며, 1323년에 68세로 卒하셨다는 기록과, 배위는 강릉최씨(江陵崔氏)로 1250년에 나셨고, 1312년에 62세로 卒하셨으며, 부친관직은 전서(典書)를 지냈으며, 이름은 사립(斯立), 조부명은 수황(守璜)이라고 등재되어있습니다. 한세대를 30년으로 보면 평해황 중시조 온인은 1135년생으로 유추됩니다.
평해황씨대동보는 딸,아들,친손,외손을 평등하게 등재하고, 국제결혼을 한 경우 프로필에 각 나라 언어로 이름을 등재하여 수 세기가 지나도 전 세계에서 인터넷을 통해 혈통을 열람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완성하여 써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문화재, 유물, 선조의 행적등의 사진자료와 동영상을 활용하여 젊은 세대들과 함께 가꾸어나가는 위키성격의 대동보로 편찬하고 있습니다.
평해황씨(平海黃氏) 옛 족보 현황
1) 족보문화의 기틀을 유지해 온 귀중한 역사자료
평해황씨 구 족보는 고려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000년의 기록을 지속적으로 편찬하고 있는 가문 기록문화의 귀중한 자료입니다.
① 연속성 : 천년의 족보기록으로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② 다양성 : 목판본, 금속활자본, 필사본등으로 인쇄되었고 가승보, 파보, 가첩, 대동보 형식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어 각 시기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반영하였습니다.
③ 지역성 : 황씨는 도시조 諱 黃洛이 BC 28년에 기성(평해의 옛지명)에 정착하여 평해, 장수, 창원, 철원등 대한민국 전지역에 분포되어있어 각 지역의 생활, 역사, 인맥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있어 지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④ 학술적 가치 : 개인과 가계의 기록과 고려말부터의 인구구조, 혼인풍습, 신분질서, 사회변화를 기록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아주 높습니다.
⑤ 보존상태 : 1604년, 1705년 발행된 족보는 서문만 전해오고, 1770년 편찬된 족보는 필사본, 그 이후 발행된 족보는 원본을 스캔하여 디지탈 자료로 보관하고 있고, 홈페이지https://www.hwang.ai.kr 에 보존하여 등록된 회원들에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평해황씨 구족보는 한 가문의 기록물을 넘어 한국족보문화의 사회상을 담고있는 유산으로, 연속성, 진정성, 완전성을 갖춘 본 족보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생각되며, 앞으로도 디지털화와 공동체적 보존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활용 될 것입니다.
2) 평해황씨의 역사와 뿌리
세계황씨의 上始祖는 기원전 262년(周나라 난왕53년)에 春申君 黃歇 先組로 기록되어있고 초나라 제상을 지내셨다. 대한민국의 도시조는 신라 유리왕 5년(서기 28년)에 黃洛이 평해에 정착하셨다고 기록되어있다. 황씨(黃氏)가 동국에 번성하게 된 것은 신라가 처음 여섯 성씨를 세운 이후 부터로, 뿌리와 덩굴이 무성하게 퍼져 대대로 큰 성씨가 되었습니다.
| 1604년 평해 황씨 족보 서문 (平海黃氏族譜序) 번역문
황씨(黃氏)가 동국(우리나라)에 번성하게 된 것은 신라가 처음 여섯 성씨를 세운 이후부터로, 뿌리와 덩굴이 무성하게 퍼져 대대로 큰 성씨가 되었다. 계파를 나누어 본관으로 삼은 평해(平海), 철원(鐡原), 창원(昌原), 장수(長水) 같은 곳이 그 두드러진 곳이나, 그 처음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속설에 전하기를 신라 시대 옛날에 황장군(黃將軍)이라는 자가 구장군(丘將軍)과 같은 시기에 들어와서, 황장군은 월송(越松) 북쪽 기슭에 거주하여 지금까지 황장군 터가 남아 있고, 구장군은 구미(丘尾) 북쪽 포진(浦津)에 머물렀다 하며, 이 내용이 모두 군지(郡誌)에 실려 있다. 그러나 세대가 아득히 멀고 문헌의 자취로 증명할 길이 없으니, 생각건대 황씨의 시원(始源)이 여기에서 비롯된 듯하나 지금 당장 증거로 삼기는 어렵다.
철원, 창원, 장수의 황씨들은 평해에서 나뉘어 속하게 된 것이니, 그 처음을 따지면 곧 하나의 조상이다. 고려에 들어온 이후로 역대에 걸쳐 융성하고 이름이 드러나 문무(文武)가 끊이지 않고 고위 관직에 올랐으며, 우리 왕조(조선)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그 자취를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조상께서 깊은 어짐과 두터운 은택으로 북돋아 기르시고 점차 넓혀오신 것이 어찌 아니겠는가.
백 천 년 동안 그 가문을 전하고 대대로 그 업을 잇는 것은, 참으로 심은 것이 있으면 거두는 것이 있고 물을 댄 것이 있으면 흐르는 것이 있음과 같다. 그 당시에는 반드시 서로 전해지는 믿을 만한 족보가 있었을 것이나, 고려 말기에 해구(왜구)가 창궐하여 죽령 이남이 무리지어 도적의 소굴이 되자 사람들이 모두 난리를 피해 북으로 옮겨가면서 옛 기록(문헌)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그러나 우리 성씨가 조정과 사방에 두루 퍼지게 된 것도 또한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황학(黃壆)이 문천군(文川郡)에 묻히면서 이로 인하여 또 번성하여, 각 고을에 흩어져 사는 자들이 겨우 머리카락 한 올에 매달린 듯하나 오히려 대가 끊어지지 않았으니 또한 다행이다.
돌아보건대 족보를 잃어버려 (뿌리를) 전해 듣지 못한 까닭에, 평해 황씨 자손들이 두 성씨로 나뉘어 각각 그 조상을 조상으로만 모시니, 실로 그 처음 하나의 시조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여 (같은 혈족임에도) 서로 혼인을 맺으면서도 태연히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이 어찌 명문거족 가운데 큰 불행이 아니겠는가!
평리공(評理公)은 익대공신(翊戴功臣)이 되어 고을(郡)을 승격시켰고, 사성공(司成公)은 경전에 밝고 행실을 닦은 것으로 세상에 칭송받았다. 근대에 또 황서(黃瑞)와 황준량(黃俊良)처럼 학식이 넓고 아는 것이 많은 이들이 있었으나, 모두 그 하나의 시조를 상세히 밝혀 같은 혈통(同宗)으로 드러내지 못했으니, 마침내 우리 자손들에게 끝없는 통탄이 되었도다. 아아! 우리 고향은 구석진 고을이요, 우리 무리는 부끄러운 자손이다. 구석진 고을에 살며 못난 자손이 되어, 대대로 이어온 명문거족이 평민과 노비(氓隷)의 무리로 전락하고, 한 핏줄인 자손들이 길 가는 남남(行路)보다 멀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이 끝없는 아픔이 이에 이른 것을 또 어찌할 것인가. 게다가 임계(壬癸, 임진년과 계사년의 왜란)의 병화로 휩쓸린 것이 고려 말기에 탕진된 것보다 심하니, 훗날에 근거로 삼을 만한 것이 없는 것이 오늘날 보존된 것이 없는 것보다 더 심할 것이다. 평민과 노비로 전락하고 길 가는 남남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탄식이 오늘날 못난 자손들이 겪는 부끄러움보다 장차 더욱 심해질 것이다. 외손의 외파(外派)와 외가의 외족(舅族)까지 한 번 기록하고 또 여러 번 기록하여 마지않은 것은 우리가 사족(士族, 뼈대 있는 가문)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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